2016년 10월 9일 연중28주일 감사성찬례 안내
<본기도>
주 하느님,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께서 베푸시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언제나 주님의 풍성한 은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교회를 돌아보시고, 이 교구의 주교를 선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인도하시어, 주님의 백성을 돌보며 진리를 선포하고,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헌신할 충실한 목자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 : 예레 29;1,4-7>
* 1독서는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1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간 장로들을 비롯하여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에게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편지를 띄운 일이 있었다.
4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5 너희는 거기에서 집을 짓고 살아라. 과수원을 새로 마련하고 과일을 따 먹으며 살아라.
6 장가들어 아들 딸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삼아 손자 손녀를 보아라. 인구가 줄어서는 안 된다. 불어나야 한다.
7 나에게 쫓겨 사로잡혀 가 사는 그 나라가 잘 되도록 힘쓰며 잘 되기를 나에게 빌어라. 그 나라가 잘 되어야 너희도 잘 될 것이다.
* 이것은 1독서의 말씀입니다.
<시편 : 시편 66;1-12>
1 온 땅은 하느님을 환호하여라. 존귀하신 이름을 노래하고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라.
2 이렇게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당신은 두려우신 분, 그 하신 일 놀랍습니다.
3 당신의 힘, 그 크신 능력을 보고 원수들이 무릎 꿇습니다.
4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리고 찬양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5 오라, 와서 보아라. 하느님 하신 일들을, 인간에게는 엄청나고 두려운 일들을.
6 바다를 단단히 땅으로 바꾸셨고, 사람들을 걸어서 건너게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쁨은 그분 안에 있다.
7 그분은 영원한 힘의 통치자, 그 눈은 만방을 내려 보시고 살피시니, 아무도 머리
들어 반역하지 못하리라.
8 민족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 : 2디모 2;8-15>
* 2독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말씀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오.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내가 전한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9 나는 이 복음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고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읍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과 영원한 영광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있읍니다.
11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13 우리는 진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언제나 진실하시니 약속을 어길 줄 모르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
14 다음과 같은 것을 신도들에게 깨우쳐 주시오. 말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지 말라고 하느님 앞에서 엄숙히 명령하시오. 그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을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 이것은 2독서의 말씀입니다.
<복음 : 루가 17; 11-19>
* 성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 가시게 되었다.
12 어떤 마을에 들어 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14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 와
16 그 발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18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 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면서
19 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말씀묵상>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 너를 살렸다. 루가 17:19
오늘 복음에서는 한 사람도 아니라 무려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만난 곳은 마을이 아니라 바로 마을의 입구였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능력을 듣고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치유를 받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가오지도 못한 채 멀찍이 서서,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사제에게 가는 동안 그들의 몸은 깨끗해졌습니다. 나병은 죄의 결과였기 때문에, 그곳을 지배하는 관리나 군인이 아니라 사제에게 가서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아홉 명은 그대로 직진하여 사제에게 달려갑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은 자신들이 치유 받았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어쩌면 다시 나병에 걸릴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제는 세속에 복귀하게 되었다는 그 마음 하나만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영적인 감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일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하느님과 같은 분에 의해 행해진 것임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병이 치유된, 그러나 여전히 잠재적 나병균을 보유하고 있는 아홉 명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번 치유를 계기로 완전히 과거의 삶과 결별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별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선택하고 무엇보다도 그 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어쩌면 우리의 구원이 열에 한명 정도로 있을까 말까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질병, 고통, 죽음 등의 한계상황과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는 이 세상의 모든 제도와 구조, 그리고 질병 너머에 초연히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내가 무엇과 한 편이 되어야 하는가? 내가 나보다 공고하고 영원한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연합하라.하느님을 믿어라. 그러면 너는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주인과의 연합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기 만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주 하느님이 그런 힘이 있음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22 / 기도와 오래 참음>
인내를 뜻하는 두 단어 patience와 perseverance는 충성스러움, 혹은 충실함이라는 같은 미덕의 두 가지 측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두 단어를 반대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patience는 거의 절망적 상태에서 물러나는 의미로, 다른 한편 perseverance는 교만한 마음으로 완강하게 버티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차원에서 우리는 거룩한 열망과 거룩한 겸손을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거룩한 열망과 거룩한 겸손은 하느님을 닮은 영혼의 상호 보완적인 두 측면입니다. 알기는 쉬울지 모르나 그것을 구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참으시고 동시에 인내하십니다. 물결이 바위를 휘감으며 흐르듯이 부드러우시고, 멈춤이 없으십니다. 우주에서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강한 힘은 언제나 하느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로렌스 형제는 ‘기도 생활에서 건조함이나 무감각이 찾아 올 때야말로 참으로 충실함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대화 1) 우리가 기도 중에 경험하는 건조함, 공허함, 고통스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그 충실함은 우리의 의지와 가슴에서 비롯됩니다. 감정은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는 심리학자는 우리의 감정이 가장 소중하지 않으며, 우리의 인격의 한 부분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파도이며 우리는 물입니다. 감정은 실재보다 더 지속적으로 보이는 물살과 같습니다.
우리 의지 안에서 오직 당신의 현존을 강하게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은 감정 안에서 약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감정적 목발 없는 걸을 수 없는 영적 불구자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적여정에서 메마른 건조함과 고통스러움과 실패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의 감정 속으로, 또는 시각적이 체험 속으로 오실 수 있지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의 의지 속으로 오실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스런 혼인잔치의 현장인 가슴(Heart)으로 향하는 전능하신 하느님 현존은 우리의 자유로운 동의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을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탈하지는 않습니다.하느님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밖에서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러나 문을 열수 있는 문고리는 오직 인간 영혼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문화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와 온전함을 향한 갈망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과장된 세 가지 새로운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폭력의 두려움,시간낭비의 두려움 그리고 환상주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부활의 로렌스형제는 ‘기도 중에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될 반감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런 자신을 물리쳐야 합니다.’(편지 6)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 몸들을 사랑한다면, 우리 몸에 상해를 입히게 될 것들을 물리쳐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가족과 조국을 사랑한다면, 필요에 따라 가족과 조국에 피해를 입힐 것들을 물리쳐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영혼을 사랑한다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고, 우리를 기도에서 돌아서게 만들고, 영적 실패를 조장하는 모든 것들 - 게으름, 욕정, 두려움, 자기연민, 자기중심주의 등 –을 물리쳐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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