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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0. 14:11 - artibass

2016년 11월 20일 연중34주일 / 그리스도 왕 주일 감사성찬례 안내





2016년 11월 20일 연중34주일 / 그리스도 왕 주일 감사성찬례 안내

 


<본기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만왕의 왕이 되셨나이다. 비오니, 온 세상에 자유를 주시어 주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통치 안에서 모든 민족이 하나 되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교회를 돌아보시고, 이 교구의 주교를 선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인도하시어, 주님의 백성을 돌보며 진리를 선포하고,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헌신할 충실한 목자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 : 예레 23;1-6>


 1독서는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1 "이 저주받을 것들아, 양떼를 죽이고 흩뜨러 버리는 목자라는 것들아, 야훼의 말을 들어라. 
2 내 백성을 칠 목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내 양떼를 돌보아야 할 너희가 도리어 흩뜨려서 헤매게 하니, 너희의 그 괘씸한 소행을 어찌 벌하지 않고 두겠느냐! 똑똑히 들어라. 
3 나 비록 나의 양떼를 이 나라 저 나라로 헤매게 하였지만, 그 중에서 살아 남은 것을 모든 나라에서 본래의 목장으로 다시 모아 들여 크게 불어나게 할 것이며, 
4 그들을 위하여 참 목자들을 세워 주리라. 그러면 내 양떼는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 없이 살 것이며,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5 내가 다윗의 정통 왕손을 일으킨 그 날은 오고야 만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는 현명한 왕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펴리라. 
6 그를 왕으로 모시고 유다와 이스라엘은 살 길이 열려 마음 놓고 살게 되리라. '야훼 우리를 되살려 주시는 이' 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리라.


 이것은 1독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시편 : 시편 46편>

 

하느님은 우리의 힘, 우리의 피난처시니,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구해주셨다.

2 땅이 흔들려도, 산들이 깊은 바다로 빠져들어도 우리는 무서워 아니하리라.  

3 바닷물이 우짖으며 소용돌이 치고, 밀려오는 그 힘에 산들이 떨지라도,  

4 만군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5 강 물줄기들이 하느님의 도성을 지존의 거룩한 처소로 즐겁게 한다.  

6 그 한가운데에 하느님이 계시므로 흔들림이 없으리라. 첫 새벽에 주께서 도움을

  주시리라.

7 한 소리 크게 외치시니 땅이 흔들리고 민족들은 뒤설레며 나라들이 무너진다.  

8 만군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 : 골로 1;11-20>


◯ 2독서는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말씀입니다. 


11 또 우리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부터 오는 온갖 힘을 받아 강하여져서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12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읍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 났읍니다.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16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읍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18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읍니다. 
1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20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읍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읍니다.


 이것은 2독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복음 : 루가 23;33-43>


 성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33 해골산이라는 곳에 이르러 사람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형에 처하여 좌우편에 한 사람씩 세워 놓았다. 
34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사람들이 곁에 서서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보고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 하며 조롱하였다. 
36 군인들도 또한 예수를 희롱하면서 가까이 가서 신 포도주를 권하고 
37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 하며 빈정거렸다. 
38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다인의 왕' 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다.
39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도 예수를 모욕하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죄수는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하고 꾸짖고는 
42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43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 가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말씀묵상>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루가 23:43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무관심과 조롱,빈정거림과 원망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어가면서도 이렇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예수님의 왕 됨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처럼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만 둘러싸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행진을 하실 때, 그 분을 알아보고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예수님을 보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향하여 위로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였습니다.이 죄수는 다른 죄수와는 달리 경솔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죄수였지만 분별력이 있었고 일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 만큼 현명했습니다. 즉 무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예수님께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보기도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던 질문,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대답하시던 때와는 다르게 확신을 가진 왕처럼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왕이 아니라면 말할 수 없는 확신에 찬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이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유다인의 왕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서 왕 되신 존재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의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떤 나라의 왕이셨을까요? 그 나라는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는 하느님이 왕이고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하는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는 요한 세례자가 선포하였고 예수께서 시작하셨으며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언젠가 완전히 성취될 영원한 생명을 맛보는 자들인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는 예수님 옆에 달린 죄수처럼 청하기만 하면 오늘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잠언 1 7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야훼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예수님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하느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이 나라에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참 지도자가 세워져 미약하나마 이 땅에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이남호신부)

 

성찰을 위한 질문

 

1) ‘하느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나누어 보도록 합시다.

2) 지금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나누어 보도록 합시다.


 

<예배(3) / 이블린 언더힐 - 예배와 응답

 

 예배란 어떤 종류의 수준으로 이루어지든 영원을 향한 피조물의 응답입니다.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적인 것을 포괄하는, 우주의 온 생명을 창조하고 지탱하며 종결짓는 분을 생각하고 찬미할 수 있는 감각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만 우리는 인간 안에 있는 예배하는 정신의 출현과 그 성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정신은 인간의 구체적인 활동들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예배는 공공연하면서도 직접적이며, 의식적이면서도 무의식적입니다. 의식적인 영역에서, 저 감정의 빛깔은 경외심 안에 담긴 두려움부터 자기를 내려놓는 사랑까지 아우릅니다.그 표현의 형태가 어떠하든, 그것은 언제나 주체-대상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실재에 대한 순전히 주관적이고 내재론적인 설명들을 혹독히 비판합니다. 예배란 초월 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배는 예배자로부터 독립된 실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나. 이 실재는 거의 언제나 깊은 신비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직접 이 낯선 무언가를 붙잡고 진지하게 예배할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 다양하게 응답하는 가운데 그 무엇에 합당한 지위를 돌릴 때, 우리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 곳에서 특정한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가장 조잡한 형태일지라도 기도의 법칙은 이미 믿음의 법칙입니다. 기도의 법칙은 실로 기도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자연주의가 생명에 관한 모든 진실을 밝혀낸다 하더라도 예배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은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본능은 인간이 물리적 실재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잠재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이 실재를 숭배하려하며 이해하고자 애씁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느님의 비젼, 우리를 압도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내어주며 모든 이를 단번에 사로잡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를 은연중에 감지하는 것이 바로 예배의 첫째 이유입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위를 향한 혼란스러운 행위들로부터 성인의 환희에 찬 자기봉헌에 이르기까지 그 밑바탕은 같습니다. 예배를 통해 영에서 나온 인간은 그 자신의 근원과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예배에서 인간은 영원히 그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응답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존재에 대해 배웁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며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지는 창조의 생명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자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성취합니다.